아침 첫 배송 준비를 하다 보면, 테이프 소리가 창고에 먼저 깔립니다. 손이 바쁜 날은 테이프 커터가 작은 바이올린처럼 울리죠. 그날도 평소처럼 포장을 마무리하고 팔레트 밴딩을 하는데, 현장 팀장님이 갑자기 “잠깐만요” 하고 상자를 뒤집어 보셨습니다. 박스 바닥에 아주 옅은 간장 자국이 생긴 겁니다. 그 한 줄이 하루 일정을 바꿨습니다. 즉시 포장 라인에 ‘이중 밀봉 재교육’을 걸고, 상차 대기 물량 전수 점검에 들어갔습니다. 누수는 포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 전체의 문제이니까요.
지난번 HACCP 점검 준비 글에서 기록과 현장을 맞추는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오늘 이야기는 그 연장선입니다. 특히 행사 운영(동탄·분당 팝업)과 무인 냉동고 운영을 거치며 다듬어 온 ‘국물 새지 않는 포장 기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조: HACCP 점검 글, 냉동고 운영 글, 팝업 후기 글들 — blog.바른장인.net )
우리가 현장에서 먼저 보는 것들
1) 내용물이 먼저입니다.
간장게장·양념게장·새우장·전복장은 액상 양이 많습니다. 내용물과 간장의 비율, 점도, 미세 뼛조각 유무까지 포장 전에 한 번 더 확인합니다. 특히 숙성 24시간차 제품은 점도가 낮아 흔들림에 취약해, 충진량을 규격의 95~97%로 제한합니다. “꽉 채우면 좋아 보이잖아요?”라는 말보다, 이동 중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2) 용기와 필름의 ‘맞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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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폴리 용기 + 열접착 필름(1차 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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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스크류 뚜껑 또는 클립락 + 방수 테이프(2차 실링)
실링 온도는 로트별 샘플로 밀봉 파단 테스트를 매 회차 실시합니다. 테이프는 길게 붙이는 것보다 **‘모서리 보강 + 십자 보강’**이 효과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공정만 표준화해도 누수 민원을 크게 줄입니다.
3) 움직임을 줄이는 완충
국물이 있는 제품은 수평 유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완충재(바이럴 시트) U자형으로 용기 측면을 감싸고, 칸칸이 파티션 박스로 움직임을 막습니다. 박스 안 빈 공간은 좋은 적이 아닙니다. 빈 공간 = 진동 = 누수 확률 상승입니다.
배송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차’에서 시작합니다
현장에선 포장 다음이 진짜 시작입니다. 상차 각도, 팔레트 높이, 차량 온도 유지까지 하나라도 흔들리면 처음의 수고가 무의미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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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차 기준: 팔레트는 하단 3단 이내로 제한, 최상단 적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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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방향: 화살표 상향, ‘이 면이 위’ 문구를 3면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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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관리: 냉장 0~4℃ 유지, 문 개폐 시간 30초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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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방지: 래핑 후 코너보드로 모서리 보강.
포장 기준, 이렇게 표준화했습니다
작업 전 체크(Pre-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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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대·실링기 알코올 소독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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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진 스푼·집게 소독수 교체 시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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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러 잉크/리본 상태 OK, 로트·유통기한 자동 인쇄 확인
공정 중 체크(In-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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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진량 3개 연속 계량(±3g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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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열실링 접합 폭 3mm 이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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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방수 테이프 모서리 보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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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수 스팟 테스트: 무작위 5개, 10회 흔들림
출하 전 체크(Out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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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낙하 시험: 30cm 낙하 3회, 누수 0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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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 중량·적층 높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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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온도 로그 시작값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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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차 사진 3컷(정면·측면·상단) 저장
작은 사건의 교훈
그날 발견한 옅은 간장 자국은 테이프 끝단 눌림 부족이 원인이었습니다. 테이프 길이를 늘리는 대신, 롤러 압착 2회 표준으로 변경했고, 모서리 보강 전에 용기 뚜껑의 ‘돌기 위치’를 전수 맞추는 규칙을 추가했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 두 줄 덕분에 이후 6주간 누수 클레임이 없었습니다. 동탄 팝업에서 시식컵을 들고 “국물 안 새서 좋다”는 피드백이 늘어난 것도 같은 시기였습니다.
무인 냉동고·행사 운영에서 배운 포장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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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 높이: 허리~가슴 라인에 국물 제품을 배치하면 꺼낼 때 기울임이 줄어듭니다. (냉동고 운영 글에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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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라벨: “이 제품은 이중 밀봉 적용, 이동 시 수평 유지” 한 줄로 체험 불안을 낮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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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필 주기: 점심·퇴근 시간대 직후 리필하면,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시간의 진열 흐트러짐을 줄입니다.
관계자라면 바로 써먹을 체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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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밀봉(열실링+테이핑) 적용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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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충·파티션 구조 적용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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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낙하 시험 결과 제공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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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트 적층 높이·사진 제공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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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 로그 캡처 제공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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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임 대응 기준표(교환·회수 SLA) 보유 여부
포장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현장의 습관과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테이프를 길게 붙이기보다, 맞아야 할 곳이 정확히 맞물리도록 시간을 씁니다. 지난 글들에서 다뤘던 기록 점검, 창고 동선, 냉동고 운영의 작은 수정들이 모여 ‘국물 새지 않는 포장’을 만들었습니다. 다음 글에는 **단가 상담 전에 결정해야 할 다섯 가지(규격·염도·리드타임·패키지·물류)**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참조: 창고 이전·물류 기준 글들 — https://blog.바른장인.net/post/2507292255 )
오늘도 기록으로 남기고, 다음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겠습니다.
바른장인 대표 박지성 드림




